초성 퀴즈 잘 푸는 법 — 두 글자가 네 글자보다 어려운 이유
초성 퀴즈를 풀다 보면 이런 일이 있어요. ㅋㄲㄹ를 보자마자 코끼리가 떠오르는데, ㄱㄹ를 보면 머릿속이 하얘져요. 글자 수만 보면 두 글자가 세 글자보다 쉬울 것 같은데 실제로는 반대예요.
ㅋㄲㄹ → 코끼리 (바로 떠오른다) ㄱㄹ → ? (한참 걸린다)
기분 탓은 아니에요. 초성으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의 수를 세어 보면 이유가 보이고, 그 이유를 알면 막혔을 때 어디부터 붙잡을지도 정해져요. 딸깍 초성 퀴즈에 들어 있는 낱말 224개를 직접 세어 가며 살펴봤어요.
초성 두 개는 361칸뿐
한글 음절의 첫소리는 ㄱ부터 ㅎ까지, 된소리 다섯 개(ㄲ·ㄸ·ㅃ·ㅆ·ㅉ)를 포함해 19개예요. 그러니 초성으로 만들 수 있는 조합의 수는 이렇게 돼요.
두 글자 19 × 19 = 361 세 글자 19 × 19 × 19 = 6,859 네 글자 19 × 19 × 19 × 19 = 130,321
우리가 아는 두 글자 낱말은 수천 개가 넘어요. 그런데 그 낱말들이 들어갈 초성 칸은 361개뿐이에요. 한 칸에 낱말이 수십 개씩 몰릴 수밖에 없어요. ㄱㄹ 칸만 해도 고래·기린·거리·그림·가루·고리… 가 전부 들어 있어요.
네 글자 초성 칸은 13만 개가 넘어요. 네 글자 낱말이 아무리 많아도 한 칸에 하나 있을까 말까예요. 그래서 초성이 길수록 거의 하나로 정해지고, 짧을수록 후보가 넘쳐서 오히려 아무것도 안 떠올라요. 머릿속이 하얘지는 건 후보가 너무 많아서예요.
실제로 딸깍 초성 퀴즈 224개 안에서도 같은 분야에 초성이 똑같은 낱말 묶음이 8개 나왔는데, 그중 7개가 두 글자였어요.
ㄱㄹ 고래 · 기린 (동물) ㅇㅇ 여우 · 악어 (동물) ㄱㅊ 김치 · 곱창 (음식) ㄱㅈ 감자 · 가지 (과일·채소) ㅅㄱ 사과 · 생강 (과일·채소) ㅇㅇ 오이 · 우엉 (과일·채소) ㅁㄱ 미국 · 몽골 (나라) ㅍㄹㄷ 핀란드 · 폴란드 (나라)
유일한 세 글자 묶음이 핀란드와 폴란드라는 점도 재미있어요. 둘 다 「~란드」로 끝나는 나라 이름이라 세 글자인데도 초성이 겹쳤어요. 딸깍은 이럴 때 둘 다 정답으로 받아요. 초성 퀴즈는 출제자의 머릿속을 맞히는 놀이가 아니고, 규칙에 맞는 낱말을 찾는 놀이니까요.
요령 1. ㅇ은 거의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아요
224개 낱말의 음절 666개를 초성별로 세어 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초성은 ㅇ(109개, 16%)이에요. 그다음이 ㅅ(78개), ㄱ(76개)이고요.
ㅇ이 많은 건 ㅇ이 사실상 소리가 없는 자리여서예요. 아·어·오·우·이·애·에·와·워·위·의… 모음으로 시작하는 음절은 전부 초성이 ㅇ이에요. 그러니 ㅇ 하나는 「모음으로 시작한다」는 것 말고는 알려 주는 게 거의 없어요. 첫 글자가 ㅇ인 낱말도 224개 중 44개로 다섯 개에 하나꼴이에요.
그래서 초성에 ㅇ이 섞여 있으면 ㅇ이 아닌 자리부터 붙잡으세요. ㅇㅌㄹㅇ라면 ㅇ 두 개는 잠시 잊고 「ㅌ 다음에 ㄹ」이 들어가는 낱말을 떠올리는 쪽이 빨라요. 이탈리아가 그렇게 나와요.
요령 2. 드문 자음이 열쇠
ㅋ·ㅌ·ㅍ·ㅊ 같은 거센소리와 ㄲ·ㄸ·ㅃ·ㅆ·ㅉ 같은 된소리는 드물어요. 된소리 다섯 개를 모두 합쳐도 666음절 중 18개뿐이에요. 드물다는 건 그 자리에 올 수 있는 음절이 적다는 뜻이고, 그만큼 후보를 가장 크게 줄여 주는 단서가 돼요.
ㄸㅂㅇ → ㄸ으로 시작하는 음식은 많지 않다 → 떡볶이 ㅉㅈㅁ → ㅉ으로 시작하는 음식은 더 적다 → 짜장면
초성을 볼 때 왼쪽부터 순서대로 읽지 말고, 가장 드문 자음이 어디 있는지부터 찾으세요. 거기에 올 수 있는 음절 몇 개를 먼저 떠올린 다음 나머지 자리를 맞춰 보면 돼요.
요령 3. ㄹ로 시작하면 외래어부터 의심하기
ㄹ은 전체 음절 중 60개(9%)로 꽤 많이 나오는데, 첫 글자로는 224개 중 단 3번뿐이었어요. 라면, 러시아, 레몬. 셋 다 외래어예요.
우리말에는 ㄹ로 시작하는 낱말이 드물어요. 한자어도 첫소리 ㄹ은 대개 ㄴ이나 ㅇ으로 바뀌어 읽혀요(두음 법칙: 력사는 역사로, 로인은 노인으로). 그래서 첫 초성이 ㄹ이면 들어온 말일 가능성이 확 높아져요. 음식이면 라면·라자냐, 나라면 러시아·루마니아 쪽을 먼저 뒤져 보세요.
요령 4. 받침은 초성에 안 나와요
초성은 각 글자의 첫소리만 남기니 받침은 전부 사라져요. 김치와 곱창이 둘 다 ㄱㅊ인 것도 그래서예요. 「김」의 ㅁ과 「곱」의 ㅂ, 「창」의 ㅇ이 모두 지워졌어요.
그러니 초성만 보고 떠올릴 때 받침 없는 글자에만 머물지 마세요. ㄱ은 가·거·고뿐 아니라 감·곱·김·강·곰도 돼요. 막혔을 때 글자마다 받침을 하나씩 붙여 보면 갑자기 풀리는 경우가 많아요. ㄱㅊ를 「가치」·「고추」에서 멈추지 말고 첫 글자를 「김」, 「곱」으로 바꿔 보면 김치와 곱창이 나와요.
분야를 알면 칸이 줄어요
앞에서 두 글자 초성 한 칸에 낱말이 수십 개 몰린다고 했어요. 그 수십 개를 가장 크게 줄여 주는 건 따로 있어요. 바로 분야예요. ㄱㄹ만 보면 끝이 없지만, 「동물」이라는 말이 붙는 순간 고래와 기린 둘로 줄어들어요.
초성 퀴즈가 대개 「동물 초성 퀴즈」, 「음식 초성 퀴즈」처럼 분야를 먼저 알려 주는 것도 그래서예요. 분야 없이 초성 두 개만 주면 퍼즐보다는 운에 가까워요. 딸깍 초성 퀴즈도 동물·음식·과일·채소·나라·사자성어 다섯 분야로 나눠 두었고, 막히면 뜻을 한 줄 보여 주는 힌트가 있어요.
두 글자에서 막히면 이 순서로 해 보세요. 분야로 칸을 좁히고, ㅇ은 건너뛰고, 드문 자음부터 붙잡고, 받침을 붙여 보기. 웬만한 문제는 이 순서 안에서 풀려요.